로봇도 과충전하지 않겠다는데
이틀 전, 서울 조계사에서 로봇 스님이 등장했습니다. 법명은 '가비'. 승복을 입고 합장까지 한 로봇에게는 사람의 오계와는 조금 다른 로봇 맞춤형 오계가 주어졌습니다. 그중 하나가 유독 마음에 남았습니다.
"에너지를 아끼고 과충전하지 않겠습니까?"
스님의 질문에 로봇은 대답했습니다.
"예, 않겠습니다."
그 장면을 보는데 웃음이 절로 나왔습니다.
로봇도 에너지를 아끼고,
과충전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는구나.
문득 요즘 저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사실 요즘 저, 절전 모드입니다.
요즘 왜 콘텐츠 안 올리세요?
며칠 전, 제 콘텐츠를 구독해주시는 분께 질문을 받았습니다. 기다려주신 마음이 감사했습니다. 그런데 "바빠서요."라고 답하기에는 조금 애매했습니다.
물론 외부 원고 청탁 마감이 코앞이었고, 해야 할 일들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숨 돌릴 틈 없이 바쁜 날들만 보낸 것은 아니었습니다.
매일 아침 운동하고, 식단을 챙기는 일은 계속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외의 일들은 최소한으로 줄였습니다.
다이어리는 2주째 비워진 상태이고, 읽다 만 책은 그대로 놓여 있습니다. 계획했던 콘텐츠도 올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외부 원고 마감이 먼저였고, 급한 일부터 처리하다 보니
평소의 루틴들이 하나둘 뒤로 밀렸습니다.
예전 같았으면 다 해냈겠지만 콘텐츠도 올리고, 글도 쓰고, 외부 원고도 마감하고, 다이어리도 쓰고, 책도 읽고.
예전 같았으면 어떻게든 다 해냈을 겁니다. 조금 무리해서라도, 스스로를 과충전해서라도 해냈을 겁니다. 그런데 요즘은 그러지 않습니다.
꼭 해야 할 일들만 최소한으로 합니다. 내가 건강하게 사는 일을 가장 우선으로 합니다.
나머지는 잠시 뒤로 미루고 있습니다.
한 달 가까이 에너지 절약 모드로 살다 보니, 오히려 에너지에 여유가 생겼습니다.
새로운 영상을 편집하는 대신,
예전에 썼던 글들을 다시 보고 있습니다.
덕분에 그동안 미루고만 있었던 '집밥 처방전'도
다시 구상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영상 촬영하는 데 시간을 보내는 대신,
아이와 보내는 시간이 더 늘었습니다. 덕분에 아이가 다시 엄마 바라기가 되었습니다.
하루짜리 배터리를 3일 동안 쓰는 법 얼마 전 여행을 갔을 때도 비슷한 일이 있었습니다.
여행 전 미처 스마트워치 충전기를 따로 챙기지 못했습니다. 매일 충전하지 않으면 하루 만에 꺼질 것이 분명했습니다. 그래서 여행 내내 절전 모드를 사용했습니다. 절전 모드를 켜자, 하루면 꺼졌을 스마트워치가 3일 이상 버텼습니다. 덕분에 여행 마지막 날까지 시계는 꺼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날, 급하게 혼자 등산을 하기로 했습니다. 절전 모드만으로도 불안해졌습니다. 그때 발견한 것이 '시계 전용 모드'였습니다. 여러 스마트한 기능은 모두 꺼두고, 오직 시계 기능에만 충실한 모드였습니다. 시계 전용 모드로 설정하니 무려 8일 동안 사용할 수 있다고 표시되었습니다. 등산하는 내내 시계가 꺼질까 봐 불안해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저것 다 하려고 하기보다
진짜 중요한 기능만 남겼기 때문입니다.
완충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삶도 조금 비슷한 것 같습니다. 모든 일을 다 해내려고 하기보다, 지금 진짜 필요한 것만 남길 때 오히려 더 오래갈 수 있습니다.
과충전하지 않는 삶은
어쩌면 로봇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도 필요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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